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가짜뉴스 인식론 정보 위계와 신뢰

by benefitpd 2025. 12. 10.

가짜뉴스 인식론 정보 위계와 신뢰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손끝 하나로 수백만 개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시대, 정보의 양적 팽창은 곧 진실의 왜곡 가능성을 함께 높였습니다. 그 결과 나타난 사회적 현상이 바로 ‘가짜뉴스(fake news)’입니다. 가짜뉴스는 단순한 오보나 잘못된 추측을 넘어, 의도된 허위 정보로써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혼탁하게 만들며, 개인과 공동체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립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인식론(epistemology) – 즉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믿는가, 그리고 그것은 믿을 만한가에 대한 질문 – 을 전면적으로 흔드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가짜뉴스가 인식론적 차원에서 어떤 혼란을 초래하는지,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어떻게 위계화되고 신뢰되는지를 탐구합니다. 특히, 지식이 단순히 참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누구로부터’ 얻어졌는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에 따라 신뢰 여부가 달라지는 오늘날의 복잡한 정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믿을 만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성찰합니다.

가짜뉴스와 인식론적 위기: 지식의 붕괴와 확증 편향

가짜뉴스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과 허위의 경계를 교란함으로써, 지식의 조건 자체를 흐리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고전 인식론에서 지식은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으로 정의됩니다. 즉,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안다'고 할 수 있으려면, 그 믿음이 사실이어야 하며, 그 믿음이 정당한 이유에 기반해야 하며, 그 사람은 그것을 진실로 믿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이러한 세 가지 요건 모두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립니다. 먼저, '참됨(truth)'이 흔들립니다. 가짜뉴스는 전문적인 편집, 인용 왜곡, 자극적 이미지 등을 통해 사실처럼 보이도록 꾸며져 있어 일반 사용자가 그것을 거짓이라고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정당화(justification)'가 약화됩니다.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익명 계정을 통해 퍼지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보를 신뢰할 근거가 부실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믿음(belief)'이 이상하게 작동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 즉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정보에 더 쉽게 끌리기 때문에, 거짓 정보임을 알면서도 이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단순히 정보의 문제를 넘어, 지식의 정의 자체에 도전장을 내미는 존재입니다. 특히 알고리즘 기반의 SNS는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은 사용자의 클릭, 좋아요, 댓글 등을 기반으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며, 이로 인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화됩니다. 사용자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콘텐츠보다,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바를 확인해주는 콘텐츠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이는 사회 전체의 인식론적 기반을 파편화하고, ‘공통된 사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단순한 개인의 오판을 넘어, 지식 공동체 전체의 신뢰 체계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모든 정보를 검증할 수 없기에 우리는 타인의 지식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그 타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사회는 더 이상 ‘지식의 공공성’을 유지할 수 없으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보의 위계: 우리는 왜 어떤 정보를 더 믿는가?

정보를 향유하는 현대인은 사실상 끊임없이 ‘선택’하고 ‘구분’합니다. 수많은 뉴스, 영상, 댓글, 블로그, 기사 중 우리는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은 무시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 바로 ‘정보의 위계(hierarchy of information)’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보를 계층화하여 신뢰도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위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 기술에 따라 계속해서 재편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부 발표, 학술 기관, 전통 언론 등 '제도적 권위'에 기반한 정보가 높은 신뢰를 받았습니다. 즉, 1차 정보(관찰, 공식 발표) → 2차 정보(언론 보도) → 3차 정보(개인 의견, 해석)라는 위계가 상대적으로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SNS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위계를 해체시켰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언론 기사보다 유튜버의 경험담을 더 신뢰하며, 논문보다 SNS 짧은 영상이나 요약 콘텐츠를 더 선호합니다. 특히 MZ세대의 경우 ‘정보의 형식’과 ‘전달자 이미지’가 정보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동조 가능성’이 신뢰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된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정보가 객관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감정에 맞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정보의 신뢰가 이성보다 정체성, 감정, 소속감에 좌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백신에 대한 과학적 설명보다 부작용을 겪었다는 주변인의 체험담이 더 강하게 작용하거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해석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상 등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정보의 위계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면서, 우리는 무엇이 ‘더 믿을 만한가’에 대한 기준조차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정보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 인식 구조 전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철학적 시사점을 던집니다.

신뢰의 철학: 믿음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신뢰는 우리가 지식을 얻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입니다. 우리는 과학, 언론, 교육, 제도, 전문가, 친구 등 수많은 경로를 통해 정보를 접하지만, 그 모든 정보를 스스로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특정 출처에 대한 ‘에피스테믹 트러스트(epistemic trust)’를 바탕으로 정보를 수용합니다. 이는 곧 ‘지식의 사회성’을 전제로 한 개념이며, 인식론의 중요한 하위 분야인 ‘사회적 인식론(social epistemology)’에서 활발히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문제는 이 신뢰가 정치적, 감정적, 문화적 요소에 의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사회가 양극화되고, 정파 간의 대립이 격화될수록, 동일한 사실조차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진실의 조건이 사실성보다 정체성의 부합으로 대체되는 현상입니다. 더욱이 정보 생산자의 윤리와 책임도 신뢰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언론이 클릭 수를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반복하거나, 정치인이 선전 목적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을 통해 편향된 콘텐츠를 확산시킬 때, 대중은 결국 어떤 정보도 믿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신뢰는 사라지고, 냉소가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신뢰 회복을 위해 철학이 제안할 수 있는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식적 겸손(epistemic humility)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언제나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둘째, 비판적 사고의 훈련을 통해 정보의 출처, 맥락, 의도를 분석하고, 감정에 치우친 정보 수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지식의 공공성 회복이 필요하며, 신뢰받는 전문가, 투명한 제도, 검증 가능한 언론 환경이 복원되어야 합니다. 넷째, 플랫폼 윤리의 강화가 필요하며, 정보 확산의 구조적 책임을 플랫폼이 져야 하고,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요구됩니다. 철학은 정보의 단순한 참·거짓 구분을 넘어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왜 믿으며, 그것이 어떤 공동체를 형성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합니다. 가짜뉴스 시대, 철학은 신뢰를 복원하는 사회적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가짜뉴스는 단지 잘못된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식 사회의 구조, 정보의 신뢰 방식, 인간 인식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인식론적 도전입니다. 우리는 매일 무수한 정보를 접하지만, 그중 무엇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결정은 단순한 사실 판단을 넘어, 철학적 성찰과 윤리적 책임을 요구합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정보 판단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정보를 믿는다는 것은 곧 그것을 말한 사람, 말하게 한 구조,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내 자신을 함께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진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일의 사회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