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트르의 존재론은 인간을 본질이 정해진 사물로 보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를 넘어가며 선택으로 자신을 짓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는 의식이 ‘무’의 작용을 통해 현실을 거리 두고 가능성을 여는 운동이라 보았고, 바로 그 가능성 앞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선언했다. 자유는 무한허용의 표어가 아니라 자기변명과 타자 탓의 회로를 끊는 냉혹한 구조이며, 이를 회피하는 기술이 곧 자기기만이다. 더불어 그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자유가 결코 독백이 아님을 밝혔다.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나를 대상화하는 힘이어서, 나는 그 앞에서 수치와 자부심을 동시에 경험하고 나의 가능 공간을 다시 배치한다. 직장과 관계와 공적 장면에서 우리는 승인 욕망과 규범의 압력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책임을 외부에 떠넘기고, 때로는 시선의 감옥에 스스로 갇힌다. 본 글은 이러한 사르트르의 통찰을 현실 장면에 맞추어 해설하고, ‘상황·사실성·초월·책임’의 네 축으로 선택을 기록하는 프로토콜과 ‘시선 관리’의 윤리적 장치를 제안한다. 목표는 자유를 감상으로 미화하지 않고 책임의 기술로 번역하여, 타인의 시선 속에서도 자기 결정을 유지하는 실질적 문법을 제공하는 데 있다.
자유는 사치가 아니라 구조이며 타자의 시선은 감옥이 아니라 거울이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의 자유는 장식이 아니라 전제이다. 그는 인간을 곧바로 어떤 본질의 실현으로 보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를 초과하며 아직 아닌 것을 향해 나아가는 ‘대상-아님(대자적 존재)’으로 파악하였다. 이때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방탕의 구호가 아니라, 선택을 피할 수 없다는 실존의 구조를 가리킨다. 우리는 상황 속에 던져졌고(사실성), 그러나 그 상황을 그대로 등가의 운명으로 승인하지 않고 벗어나거나 재배치할 능력(초월)을 가진다. 바로 이 틈에서 자유가 발생한다. 그는 따라서 책임을 전능의 무게처럼 부여한다. 선택하지 않음도 하나의 선택이며, 변명은 선택의 저자임을 숨기려는 서술적 기술에 불과하다. 그가 ‘자기기만’이라 부른 것은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나는 나를 물건처럼 설명하여 변화를 불가능한 것으로 꾸미거나, 반대로 환경을 무화하여 모든 실패를 순수한 의지 부족으로 돌리는 양극단을 오간다. 사르트르는 이 둘 모두를 거부한다. 그는 상황을 삭제하지도 절대화하지도 말고, 그 사이의 긴장에서 자기 결정을 매 순간 갱신하라고 촉구한다. 바로 여기에서 ‘타자의 시선’이 등장한다. 시선은 보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대상으로 굳히는 구조적 힘이다. 누군가의 문이 삐걱이며 열릴 때 도둑질하던 자가 수치로 얼어붙는 장면처럼, 시선은 나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의 서술을 들이민다. 나는 그 서술을 내면화하여 ‘역할로서의 나’에 머물거나, 그 서술과 거리를 두고 새 선택의 문장을 갱신할 수 있다. 시선은 그래서 감옥이면서 동시에 거울이다. 감옥이라는 말은 타인의 판단에 나를 전부 위탁할 때의 퇴행을 가리키고, 거울이라는 말은 내 행위를 타자의 관점에서 점검하고 책임의 언어를 정교화할 기회를 뜻한다. 문제는 우리가 흔히 둘 중 하나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승인 욕망에 종속되어 자유를 포기하거나, 모든 시선을 경멸하며 책임의 사회적 차원을 거부한다. 사르트르의 난도가 여기에 있다. 그는 자유를 순수한 내면의 결단으로 환원하지 않고, 시선의 장 속에서 발생하는 서술 경쟁으로 본다. 그러므로 성숙한 선택은 홀로의 비장함이 아니라 장면 전체를 고려한 문장 구성이다. 회의에서 침묵을 택할 때도 나는 ‘상황·사실성·초월·책임’의 질서를 따라 그 선택의 저자가 되어야 한다. 타인이 나를 규정하려 들 때 나는 그 규정과의 거리를, 다시 말해 그 규정에 대한 나의 서술적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자유는 순결이 아니라 편집의 기술이며, 책임은 결과의 소유권을 자발적으로 서명하는 행위다. 이 관점에서 보면 ‘타자의 시선’은 일터의 성과평가와 온라인의 평판, 가족의 기대와 고객의 항의 같은 현대적 장면에서 매일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비난의 공포와 인정의 갈증을 오가며 종종 자기기만을 합리화한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가리킨다. 시선의 압력을 인정하되 그 압력에 내 서술을 위탁하지 말고, 상황의 무게를 인정하되 그 무게로 책임을 면제하지 말라고. 이것이 자유의 냉혹함이자 동시에 인간 존엄의 근거다.
상황·사실성·초월·책임의 프로토콜과 시선 관리의 윤리 현장 적용 매뉴얼
사르트르의 어려운 어휘를 오늘의 장면으로 번역하기 위해 ‘SSER(상황·사실성·초월·책임)’이라는 간명한 프로토콜을 제안한다. 첫째, 상황을 기술한다. 선택의 무대와 규칙과 이해관계자를 사실표로 적는다. 여기에는 타자의 시선의 위치도 표시한다. 누구의 평가가 작동하는가, 어떤 지표가 사용되는가. 둘째, 사실성(facticity)을 분해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마감일, 예산, 법규, 과거의 약속)과 당장은 바꾸기 어려운 것(팀 구성, 기술 부채)을 구획한다. 사실성의 인정을 통해 ‘불가변의 책임 전가’와 ‘권한 과장’의 모두를 피한다. 셋째, 초월(transcendence)의 목록을 쓴다. 지금 여기에서 재배치 가능한 변수를 적는다. 설계의 단순화, 위험 기반의 단계적 절차, 공개 회고의 도입, 언어의 재구성 같은 것들이다. 넷째, 책임(responsibility)을 문장화한다. “나는 X를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 Y에 대해 Z 시점에 보고하고 수정하겠다.”라는 1인칭 서약으로 끝맺는다. 이 네 줄은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의 구조를 문서로 구현한다. 구체 장면을 보자. 제품팀 리더가 일정 지연 속에서 외부 평가를 앞두고 있다. 상황: 출시 D-10, 고객 시연, 재계약 위험, 경영진의 시선. 사실성: 핵심 라이브러리 결함, 보안 점검 일정 고정, QA 인력 부족. 초월: 기능 감산(‘핵심 시나리오’만 남기기), 위험 기반 인증으로 전환, 고객 시연 범위 조정, 버그 공개 로그. 책임: “나는 감산안을 택한다. 고객에게 범위를 사전 고지하고, 지연의 원인을 공개 로그로 남기며, 시연의 실패 조건을 합의한다.” 이 서술이 없다면 누구나 ‘사정이 그랬다’는 수동태로 사라진다. 다음은 ‘시선 관리’의 윤리다. 시선은 도피의 명분도, 경멸의 대상도 아니다. 우리는 시선을 세 등급으로 나눈다. 필수 시선(법·안전·이익충돌 방지), 도구적 시선(품질 향상·학습), 소음 시선(비난·낙인·무책임한 평판). 필수 시선은 적극 수용하고, 도구적 시선은 설계로 길들이며, 소음 시선은 차단한다. 설계의 예로, 회의에서는 ‘발언 1회=경청 1회’ 규칙과 출처 있는 비판만 허용하는 원칙을 적용한다. 온라인 채널에서는 평가를 점수화할 때 근거 텍스트 입력을 의무화하고, 무근거 비난은 가시성에서 배제한다. 타자의 시선을 이렇게 계층화하면,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할 시선에만 응답하면서 동시에 창조적 시도를 방해하는 소음을 줄일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장치가 ‘자기기만 탐지기’다. 다음 문장들이 회의록이나 자기 독백에서 발견되면 경고를 올린다. “원래 다 이렇게 해요.”(사실성의 절대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초월의 과장)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책임 회피) “나 같은 사람은 원래…”(본질화의 유혹) 발견 즉시 SSER 문장으로 치환한다. 예컨대 “원래 다 이렇게 해요.”는 “우리의 사실성은 X다. 그러나 초월 변수 Y가 있다. 나는 Y를 택하겠다.”로 교정한다. 대면 관계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팀원이 실수했을 때 ‘시선의 감옥’을 만들지 않도록 비난 대신 서술을 요구한다. “그때 당신이 본 상황은 무엇이었나, 바꿀 수 없는 사실은 무엇이었나, 가능한 대안은 무엇이었나, 다음번 당신의 책임 문장은 무엇인가.” 이 네 질문은 사르트르의 철학을 인사관리와 교육의 언어로 바꾸는 문. 마지막으로 ‘선택의 회고’ 루틴을 붙인다. 주간 말마다 세 줄만 남긴다. 이번 주 나를 가장 규정한 타자의 시선은 누구의 무엇이었나. 그 시선 앞에서 나는 어떤 자기기만을 사용했나. 그 순간의 SSER 문장을 지금 다시 쓰면 무엇이 달라지나. 이 회고는 자유를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수백 번의 문장 갱신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책임은 사후 해명서가 아니라 사전 서약서일 때 힘을 갖는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그 서약서를 매일 쓰라고 요구한다.
자유의 냉혹함을 생활의 기술로 바꾸는 법 타자의 시선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책임의 문장
사르트르의 문장을 일상의 좌표로 옮기면 세 가지 규범이 남는다. 하나, 자유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상황과 사실성과 초월의 얽힘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저자가 된다. 저자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 또한 하나의 저자적 선택이다. 그러므로 책임은 결과에만 붙는 꼬리가 아니라 선택의 본체다. 둘, 타자의 시선은 피하거나 짓밟을 대상이 아니라 설계할 환경이다. 필수 시선은 투명하게 끌어들이고, 도구적 시선은 학습의 장치로 편입하며, 소음 시선은 비가시화한다. 이 구획이 없이 우리는 승인 욕망에 종속되거나 고립의 오만에 취한다. 셋, 자기기만의 문장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라. 본질화와 수동태, 권위의 외피로 선택의 저자를 숨기는 습관을 기록으로 드러내고 SSER 문장으로 즉시 교정하라. 이 세 규범은 겁을 주려는 추상적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합의를 빠르게 하고 품질을 지키며 존엄을 보존하는 운영 기술이다. 실행을 위해 마지막 체크리스트를 남긴다. 오늘 치를 중요한 회의를 하나 고르고, 안건 문서 첫머리에 SSER 네 줄 템플릿을 삽입한다. 참석자 각자가 자기 선택의 책임 문장을 1인칭으로 쓰게 하라. 발언 규칙에는 근거 있는 평가와 경청-발언의 균형을 포함시키고, 무근거 비난을 가시성에서 배제하라. 개인 차원에서는 하루 끝에 ‘시선 회고’를 세 문장으로 적는다. “오늘 나를 흔든 시선은 무엇이었는가. 그 앞에서 나는 무엇을 과장하거나 삭제했는가. 내일의 SSER 문장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책상 앞에 붙이라.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의 저자이며, 타인의 시선 속에서도 그 문장을 수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 문장은 자유의 냉혹함을 비탄이 아니라 능력으로 전환시킨다. 우리는 상황을 외치지 않고 사실성을 인정하며, 초월을 과장하지 않고 가능한 한 줄을 전진시킨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전진에 서명을 남긴다. 그 서명이 곧 책임이다. 이 책임이 누적될 때, 타자의 시선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라 나를 정교하게 연마하는 거울이 된다. 자유는 그 거울 앞에서 비로소 얼굴을 얻는다. 그러니 오늘 밤 SSER 노트의 첫 페이지를 열라. 당신이 내일 서명할 1인칭 책임의 문장은 무엇인가. 그 문장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시선의 설계는 무엇이며, 차단해야 할 소음의 시선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