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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철학의 탄생과 신과 이성의 조화를 오늘의 의사결정 언어로 번역하기

by benefitpd 2025. 10. 27.

스콜라철학의 탄생과 신과 이성의 조화를 오늘의 의사결정 언어로 번역하기

중세 유니버시타스에서 전개된 스콜라철학은 맹목적 신앙의 동의어가 아니었다. 그들은 질문을 표준 형식으로 정리하고 반대 의견을 철저히 수집한 뒤 권위 있는 텍스트와 자연적 이성의 논증을 교차 검증하며 임시 결론을 도출했다. 쟁점 제기와 반대 논거 정리와 권위 인용과 응답 작성과 반론 처리라는 절차는 단순한 신학 수사가 아니라 학술적 방법 그 자체였다. 이 절차 덕분에 신앙 명제는 감정적 확신을 넘어 논리적 구조와 구분 규칙을 갖추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뢰의 출발을 말했고 안셀무스가 믿음을 이해로 이끈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과 신학의 협업 규칙을 마련하여 자연 이성과 계시의 영역을 구획하면서도 상호 조명을 허용했다. 스콜라적 형식은 오늘의 연구계와 조직 의사결정에 그대로 이식 가능한 기술이다. 논제 설정, 반대 근거 수집, 권위 검토, 핵심 구분, 응답 작성, 반대 답변, 한계 명시, 기록 공개라는 여덟 단계는 회의, 보고서, 정책 설계에서 재사용되는 재현 가능한 루틴을 제공한다. 이 글은 그 구조를 해부하고 오해를 정리하며 동시대의 합리적 토론과 정책 평가,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독자는 스콜라의 겸허하고도 단단한 사유법을 통해 신념과 근거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논쟁을 품위 있게 수렴하는 기술을 익히게 될 것이다.

“믿기 위해 이해하는가 이해하기 위해 믿는가”라는 오래된 질문

중세의 공부방을 상상해 보자. 아치가 솟은 회랑을 지나 강의실로 들어서면 나무 벤치에 앉은 학생들이 필사본을 펼쳐 놓고 조용히 대기한다. 강단의 교수가 먼저 오늘의 쿼이스티오를 낭독한다. 이를테면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가 양립 가능한가. 그는 곧바로 옵지치오네스를 부른다. 반대 측의 논거를 가능한 한 강력하게 정리하는 절차다. 자연필연이 전부라면 자유 의지는 허상이라는 주장, 전지전능이 참이라면 인간 선택이 덧없다는 주장, 성서 구절 해석의 긴장까지 빠짐없이 세운다. 이어 세드 콘트라로 권위의 증언을 인용한다. 고전 철학자의 통찰, 교부의 해설, 공의회의 결정이 이 대목에서 호출된다. 그러나 인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교수는 레스폰데오에서 자신의 응답을 제시한다. 개념의 범주를 분할하고 전제를 구획하고 혼동을 걷어낸 뒤 논증의 길을 연다. 마지막으로 아드 프리뭄, 아드 세쿤둠이라 부르는 반박 답변을 통해 각 반론을 일일이 처리한다. 놀라운 점은, 이 절차가 신학 내부의 규범으로만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법학과 의학과 자연철학의 강의에서도 동일한 형식이 반복되었고 도시의 법정과 도시국가의 의회까지 그 습관을 차용했다. 스콜라의 목표는 이성이 신앙을 대체하는 것도, 신앙이 이성을 몰아내는 것도 아니었다. 신앙은 최종 목적을 비추고 이성은 그 목적에 이르는 경로를 정돈한다. 둘의 긴장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상호 점검의 조건이다. 이러한 규범은 오늘의 과학계에서도 낯설지 않다. 가설 제시, 반증 조건 설정, 동료 검토, 재현성의 요구 등은 스콜라의 형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다만 오늘의 우리는 권위의 증언을 인용할 때 그것을 최종 근거로 삼지 않는다.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형식의 장점은 배울 수 있다. 논쟁을 정리하는 힘, 용어를 분할하는 기술, 반대 의견을 정직하게 다루는 태도 말이다. 이것이 스콜라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스콜라 방식의 기술 해부와 현대적 적용 프레임

스콜라의 힘은 형식에 있다. 첫째 쿼이스티오는 문제를 한 문장으로 고정한다. 설교의 감정과 선언의 과열을 배제하고 판단 대상을 구체화하는 장치다. 둘째 옵지치오네스는 강철 인간의 원칙을 따른다. 내가 왜 틀릴 수 있는지를 가장 정교한 형태로 적는다. 셋째 세드 콘트라는 권위의 증언을 호출하되 맥락과 번역 차이를 밝혀 과도한 권위 의존을 피한다. 넷째 레스폰데오는 결정적이다. 여기서 스콜라는 구분하기를 집요하게 실행한다. 개념의 동음이의, 범위의 차이, 원인과 조건의 전도를 교정하고 난 뒤에야 결론을 말한다. 다섯째 아드 프리뭄 이하의 반박 답변은 상대를 구겨 넣지 않는다. 반대의 핵심 통찰을 살려 자신의 설명 속에 흡수하거나 한계를 명시한다. 이 다섯 단계는 오늘의 회의에서도 고스란히 쓸 수 있다. 정책 토론이라면 다음과 같은 변환이 가능하다. 논제는 특정 세금의 도입이다. 반대 논거는 조세저항과 경기 위축의 위험, 행정비용의 증가다. 권위 인용은 타국의 선행 연구와 장기 패널 데이터다. 응답에서는 조세의 목적을 재정의하고 분배 효과와 성장 효과를 구분하여 충돌을 정리한다. 반박 답변에서는 단기 충격을 완화할 보완책과 실패 조건을 명시한다. 제품 개발로 옮겨도 같다. 논제는 기능 A의 삭제 여부, 반대 논거는 충성 고객의 이탈과 브랜드 신뢰 하락, 권위 인용은 사용자 연구와 결제 데이터, 응답은 핵심 가치 재정의와 대체 경로 설계, 반박 답변은 A/B 테스트와 유예 기간 같은 식이다. 스콜라 방식의 강점은 정중함과 정확성의 결합이다. 반대 의견을 왜곡하지 않음으로써 대화의 신뢰를 지키고, 개념의 경계를 정리함으로써 결론의 품질을 높인다. 물론 한계도 있다. 형식에 대한 과도한 충성은 변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고 권위 인용은 새로운 관찰을 가리는 안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적 적용에서는 사전 등록과 데이터 공개 같은 투명성 규범을 결합하고, 권위를 근거의 보조로만 쓰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실제 적용을 위한 프레임을 제안한다. 쿼이스티오를 한 문장으로 적고, 반대 논거를 최소 셋 이상 수집하고, 선행 근거의 출처와 최근성을 표로 검토하고, 핵심 구분 두세 쌍을 만든 뒤, 응답을 한 단락으로 쓰고, 반박 답변을 항목별로 기록하고, 결론의 한계와 실패 조건을 명시하고, 기록을 공개 저장소에 보관한다. 이 과정을 일주일 루틴으로 반복하면 조직은 논쟁의 열기 대신 학습의 온기를 얻게 된다.

 

믿음과 이성의 협업 규칙을 삶과 조직의 표준으로

스콜라철학은 중세의 종교적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그 형식을 오늘의 합리성과 결합해 실무의 표준으로 만들 수 있다. 결론을 서둘러 선언하지 말고 먼저 질문을 고정한다. 반대 의견을 정직하게 정리하고 권위의 무게를 과장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응답에서의 구분 작업이다. 개념과 사례, 규범과 사실, 원인과 상관, 목적과 수단을 분리하라. 그리고 각 반대 논거에 친절하게 답하라. 마지막으로 한계를 문장으로 남기고 실패 조건을 선언하라. 이 절차는 믿음과 이성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신념이 방향을, 이성이 경로를 맡는다. 개인의 삶에서는 신념의 문장을 일상의 루틴으로 번역하라. 예컨대 정직을 지향한다면 보고서의 데이터 가공 규칙과 이해 상충 공개 절차를 만들어 신념을 실천으로 묶어라. 조직에서는 회의 안건지를 스콜라 양식으로 표준화하고 결정 메모에는 반대 의견 요약과 반박 답변을 의무화하라. 교육에서는 학생에게 쿼이스티오 노트를 만들어 주고 세드 콘트라의 출처 평가를 가르쳐라. 이렇게 할 때 대화는 덜 공격적이고 더 생산적으로 변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미 검증된 형식을 남겼다. 남은 일은 그것을 우리의 언어와 도구로 번역하는 것이다. 오늘의 한 걸음으로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 내일 회의 안건 중 하나를 골라 스콜라 양식으로 미리 정리해 보라. 논쟁의 소음이 낮아지고 합의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신념은 불꽃이고 이성은 등불이다. 불꽃이 방향을 주고 등불이 길을 비춘다. 우리는 둘을 동시에 손에 들어야 한다. 당신의 다음 회의에서 사용할 쿼이스티오는 무엇인가. 그 논제를 위해 어떤 반대 논거를 먼저 정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