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수천 년간 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놓고 고민해 왔습니다. 특히 '정당화'와 '회의주의'는 지식 논의에서 중심적인 개념으로 작용합니다.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믿음을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믿는 바는 정말 확실한가요? 이 글에서는 지식의 본질과 정당화, 회의주의의 문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지식의 정의와 철학적 접근
지식이란 단순한 정보 축적이나 기억된 사실을 넘어서, 믿음이 진리와 정당화 과정을 통해 확립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지식을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정의는 오랜 시간 동안 철학자들에게 지식의 표준적 정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지식은 단순히 ‘믿는 것’이거나 ‘사실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믿음이 논리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 정당한 이유, 즉 정당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창밖을 보고 날씨가 흐리다고 판단했다면, 그 믿음이 실제 날씨와 일치하고, 그 판단이 정확한 관측에 기반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지식’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는 1963년 미국 철학자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에 의해 도전받습니다. 그는 참된 믿음이 정당화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며, 이 경우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지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게티어 문제’는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는 정의가 지식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이후 철학자들은 새로운 정의를 제안하며 지식의 본질을 재고하게 됩니다.
정당화의 조건과 한계
정당화란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는 데 있어 합리적 이유나 근거를 갖추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이유가 정당한가’에 대한 기준이 철학적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두 입장은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입니다. 합리주의는 이성적 추론과 선험적 직관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해 지식을 확실한 기반 위에 세우고자 했습니다. 반면 경험주의는 오직 감각 경험을 통해 지식이 형성된다고 봅니다. 로크나 흄은 인간의 마음이 처음에는 ‘빈 서판(tabula rasa)’이며, 경험을 통해 하나씩 지식을 쌓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당화 이론에는 내재주의와 외재주의도 있습니다. 내재주의는 믿음의 정당화가 주체의 인식 내에서 접근 가능한 정보에 근거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외재주의는 믿음의 정당화가 인식 외부의 조건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외재주의자는 믿음이 진리 생성적 인지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면 그것이 곧 정당화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모든 정당화 이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한 회귀(regress problem)는 믿음을 정당화하려면 또 다른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도 또 다른 근거를 요구하게 되어 결국 끝이 없다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회의주의로 이어지며, 우리가 정말로 정당화된 지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회의주의의 위협과 철학적 대응
회의주의(skepticism)는 인간이 진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고대 회의주의자들은 모든 지식 주장에 대해 동등한 반대 근거가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우리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우리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겸손한 태도로 의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현대 회의주의는 특히 인식론적 맥락에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예컨대, 뇌가 부유하는 수조 속에 놓여 있고 모든 감각 경험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면, 우리는 현실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이는 데카르트의 악마 가설과 현대 철학에서의 시뮬레이션 가설 등과 맞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철학자들의 대응은 다양합니다. 데카르트는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명하고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출발점으로 삼아 지식 체계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반면, 현대 철학자인 노지크는 진리 추적 이론을 제안해 믿음이 반사적으로 진리를 추적하는 구조라면 그것을 지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실용주의자들은 절대적인 확실성보다 실용적 유용성과 경험적 검증 가능성을 지식의 기준으로 삼아 회의주의를 넘어서는 해법을 모색합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되, 실천 가능한 수준의 정당화된 믿음을 지식으로 인정함으로써 회의주의를 실용적으로 극복하고자 합니다.
지식은 단순한 정보나 사실이 아니라,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는 철학적 조건을 만족할 때 비로소 성립합니다. 그러나 게티어 문제나 회의주의는 이 정의의 한계를 드러내며, 우리가 진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철학은 이러한 물음을 단순히 부정하거나 확신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과 논의를 통해 보다 깊은 이해에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도 일상의 믿음을 돌아보며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지식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것이 철학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