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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인의 분석과 종합 구분 비판을 개념망 운영과 근거 심사의 철학으로 재구성하기

by benefitpd 2025. 10. 29.

콰인의 분석과 종합 구분 비판을 개념망 운영과 근거 심사의 철학으로 재구성하기

콰인의 고전 논문인 「경험주의의 두 가지 교의」는 철학의 어휘 창고를 흔든 사건이었다. 그는 의미가 사전적 정의나 통상적 동의어 관계만으로 고정된다는 가정을 의심하고, 문장의 진리와 정당화가 전체 이론망의 조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 결과, ‘분석적 진리’가 의미만으로 참이고 ‘종합적 진리’가 경험으로만 검증된다는 분단은 해체된다. 동의어성은 논리·규칙·사용 관행의 얽힘에서만 확보되고, 관찰 또한 이론·장비·훈련에 의존한다. 더불어 그는 환원주의, 즉 모든 의미 있는 명제가 개별 관찰문장들의 논리적 합으로 축약될 수 있다는 신념을 비판하며, 자료와 가설이 쌍으로 얽혀 검증되는 ‘확증 전체론’을 내세웠다. 이 관점은 번역의 불확정성과 이론의 전면 수정 가능성, 그리고 ‘진리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라는 실천적 물음을 낳는다. 본 글은 콰인의 비판을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운영 철학으로 해석한다. 곧, 개념망을 어떻게 관리하고, 근거를 어떻게 표기하며, 수정의 비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로 옮긴다. 정책·데이터·연구·제품 문서에서 ‘정의/사실’의 경계가 흐릴 때 필요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절차다. 우리는 개념의 위상을 기록하고 증거의 양식을 구분하며, 수정의 파급을 계산하는 규칙을 통해 분쟁을 줄이고 합의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콰인이 겨냥한 것은 형이상학의 추방이 아니라 언어의 위생 확립이었다. 이 글은 그의 논지를 맥락화하고, 조직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념망 운영 프로토콜’을 제시함으로써 분석/종합 구분의 붕괴 이후에 남는 실천적 지혜를 제공한다.

두 가지 교의의 균열: 동의어와 환원의 신화를 걷어내고 개념망의 탄력을 확보하기

콰인이 문제 삼은 첫 교의는 ‘분석/종합’ 구분이다. 고전적 직관에 따르면 “모든 삼각형은 세 변을 갖는다”는 문장은 의미 분석만으로 참이므로 분석적이며, “비가 오면 도로가 젖는다”는 문장은 세계의 상태에 의해 참 거짓이 갈리므로 종합적이다. 하지만 콰인은 이 대립이 사전에 적힌 문장 몇 줄로 보증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동의어성은 이미 이해된 동의어성에 기대야 하는 순환에 빠지기 쉽고, 의미 공리나 의미 우연적 사실의 구분은 판정 기준이 불명확하다. 보다 급진적으로는 ‘논리적 진리’조차 고정불변의 중심이 아니라, 전체 이론망을 덜 흔들고 비용을 덜 치르는 방향으로 유지되는 규칙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두 번째 교의인 환원주의 역시 해체된다. 하나의 명제를 관찰문장들의 논리적 합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실제 과학의 운영과 맞지 않는다. 실험의 실패는 어느 한 문장에만 귀속되지 않으며, 가설·보조 가정·측정 모형·오류 구조가 함께 움직인다. 관찰은 이론에 의존하고, 장비의 조정과 데이터 전처리는 배경 가설을 전제한다. 따라서 검증은 개별 문장을 찍어내리는 심판이 아니라, 연동된 규칙들의 조정이다. 콰인은 이 상황을 ‘확증 전체론’으로 설명한다. 관찰 데이터 하나가 이론망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분산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론의 핵심을 지키기 위해 주변 규칙을 바꾸거나, 반대로 주변을 보존하기 위해 핵심을 이동시킬 수 있다. 이때 선택은 논리의 강제가 아니라 비용·단순성·예측력·체계성 같은 다기준 판단의 결과다. 여기서 ‘분석/종합’의 구분은 본질이라기보다 작업상의 표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개념망의 구조를 기록하는 일이다. 어떤 규칙이 핵심에 가깝고 어떤 규칙이 주변인지, 그것이 어떤 자료와 연결되는지 지도화해야 한다. 둘째, 근거의 양식을 구분하는 일이다. 법령·데이터·관례·모형 추정·전문가 증언이 한 문서에 뒤섞인 채 나타나면, 논의는 곧장 정의 싸움으로 치닫는다. 셋째, 수정의 비용을 계산하는 일이다. 특정 개념의 정의를 바꾸면 어떤 지표·계약·교육·코드가 연쇄적으로 변형되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지연과 혼란을 반복한다. 콰인의 비판은 기존의 의미론을 무력화하려는 냉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의미론을 ‘운영’의 언어로 다시 쓰려했다. 동의어의 판정은 사전 바꾸기가 아니라 훈련·교정·관행의 재배열이며, 환원 불가능성은 무질서를 의미하지 않고 관리의 차원을 끌어올리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분석/종합의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는 ‘개념망 운영’이라는 실천 철학이 서야 한다. 우리는 지금 그 운영의 원칙을 마련하려 한다.

 

개념망 운영 프로토콜: 근거 심사·정의 계층·변경 로그·파급 분석·번역 관리

콰인의 통찰을 실무로 내릴 때 필요한 것은 다섯 줄의 프로토콜이다. 첫째, 근거 심사(Evidence Typing). 모든 주장 옆에는 근거의 양식을 라벨로 붙인다. 데이터(관찰·실험·통계), 규범(법령·규정·윤리), 관례(업계 표준·조직 지침), 모형 추정(회귀·인과모형·시뮬레이션), 전문 증언(전문가 패널·심층 인터뷰) 등으로 구분하여, 서로 다른 양식의 근거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라벨은 분석/종합을 대체하는 최소 표기다. 둘째, 정의 계층(Definition Stratification). 핵심 용어는 ‘작동정의–사례–경계–예외’의 네 층으로 문서화한다. ‘실업’이라면 실업 기간·구직활동의 기준을 작동정의로 박고, 표준사례(구직활동 인정 서류)와 경계사례(플랫폼 노동, 단기 계약)를 병기하며, 명시적 예외(병역·질병)를 둔다. 정의의 논리적 골격과 사용 관행의 층위를 함께 적으면, 동의어 논쟁은 줄고 교정 가능한 틀이 생긴다. 셋째, 변경 로그(Change Log). 개념·지표·정책의 정의가 수정될 때는 변경 사유·효력 발생일·구버전·롤백 경로를 함께 남긴다. 더 나아가 ‘동등성 지도’를 첨부하여 신·구 정의가 어떤 변환 규칙으로 이어지는지 기록한다. 이 절차는 의미 고정의 환상 대신 의미 유지의 기술을 제공한다. 넷째, 파급 분석(Ripple Analysis). 한 개념의 수정이 미치는 영향을 그래프로 시각화한다. 지표→보고서→인센티브→계약→코드의 연쇄를 노드로 표시하고, 영향 경로를 비용과 위험으로 가중하여 대안을 비교한다. 이는 확증 전체론을 운영의 언어로 번역한 장치다. 다섯째, 번역 관리(Indeterminacy Handling). 부서·전문분야·언어 간 번역의 불확정성을 전제로 삼고, ‘용어 브리지’를 만든다. 예컨대 ‘이탈’은 데이터팀에서 ‘연속 7일 핵심행위 0’, 마케팅팀에서 ‘캠페인 미응답 28일’, CS팀에서 ‘해지 요청’으로 쓰일 수 있다. 이 경우 세 정의를 상위 개념 ‘관계 이완’ 아래 묶고, 교차 보고 시 어떤 정의를 채택할지 의사결정 규칙을 둔다. 여기에 두 가지 장치를 더한다. 하나는 교차검증(Cross-Validation)이다. 서로 다른 정의·측정·모형으로 동일 현상을 추정하여 수렴성과 민감도를 동시에 보고한다. 다른 하나는 유지비용 프레임(Cost-of-Maintenance)이다. 콰인의 웹 비유에서 어떤 매듭을 고칠지 선택할 때 기준은 ‘진리에의 충실’뿐 아니라 ‘체계 유지비용’이다. 따라서 문서에는 대안별 유지비용(교육·시스템·계약·대시보드 교체)을 숫자로 제시해, 철학적 논쟁을 경영 언어로 연결한다. 실제 장면을 보자. 정책 설계에서 ‘공정’의 의미가 충돌한다. 분석/종합 구분의 관점에서는 정의 싸움이 끝나지 않지만, 프로토콜을 적용하면 근거 라벨(법령·데이터·관례)이 먼저 분리되고, 정의 계층에서 표준·경계 사례가 드러난다. 변경 로그는 과거 판정의 정합성을 보호하고, 파급 분석은 용어 수정의 비용을 가시화한다. 제품 지표에서도 ‘활성 사용자’의 다의성이 문제다. 우리는 작동정의를 고정하고, 주/보조 지표로 관찰망을 구성하며, 부서 간 번역표를 만들고, 정의 변경을 로그 화한다. 연구 현장에서는 ‘재현성 위기’의 교훈을 끌어와 사전등록·코드 공개·데이터 버전 고정으로 의미의 추적 가능성을 높인다. 이 모든 장치는 콰인의 비판을 실무의 규범으로 바꾼 결과다. 분석/종합의 붕괴는 무질서가 아니다. 오히려 더 세세한 질서를 요구한다.

 

분석/종합 이후의 질서: 본질 대신 유지, 정의 대신 절차, 단절 대신 조정

콰인의 메시지는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운영의 관점에서 보면 실용적이다. 첫째, 본질 대신 유지를 생각하라. 개념은 고정된 핵이 아니라 관리되는 네트워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선언보다 ‘유지의 비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교육과 온보딩, 보고서와 대시보드, 코드와 계약에서 용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지도화하고, 변경이 어디까지 파고드는지 예측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정의 대신 절차를 세워라. 동의어 판정은 사전의 권위를 빌려오는 일이 아니라, 사용 규칙·표준/경계 사례·수정 절차를 문서화하는 일이다. 이 절차가 있을 때 우리는 정의 싸움의 에너지를 줄이고, 교정 가능한 합의에 더 빨리 도착한다. 셋째, 단절 대신 조정을 택하라. 관찰과 이론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우리는 교차검증과 관찰망의 설계를 통해 다양한 관점이 수렴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 데이터 팀은 다른 창으로 같은 풍경을 본다. 수렴의 기술이 곧 설득력이다. 넷째, 판정의 겸허를 잃지 마라. 번역의 불확정성과 이론의 전면 수정 가능성은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가 아니라 ‘판정에 자원을 배분하라’는 신호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근거 라벨·파급 분석·유지비용을 동반해야 한다. 다섯째, 기록을 집요하게 남겨라. 변경 로그와 동등성 지도, 사전등록과 코드 해시, 데이터 출처와 버전 타임라인은 의미의 흔적을 보존하는 기술이다. 의미는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시간 속 문서다. 마지막으로 실행 체크리스트를 제안한다. 오늘 팀에서 가장 논쟁적인 용어 세 개를 골라 근거 라벨·정의 계층·표준/경계 사례를 한 페이지로 작성하라. 다음으로 과거 6개월의 판정 변경을 로그로 복원하고, 파급 분석을 통해 다음 분기의 유지비용을 추정하라. 마지막으로 부서 간 번역표를 만들고, 교차보고 시 채택 규칙을 합의하라. 이 세 동작만으로도 회의의 분량은 줄고 결과의 품질은 올라간다. 콰인은 철학을 말의 위생으로 되돌렸다. 그의 비판은 해체가 아니라 정비다. 분석/종합 구분이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는 더 나은 문서·더 투명한 근거·더 정직한 수정으로 질서를 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