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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넘 의미는 머릿속에만 있지 않다 외재주의 해설과 현장 적용 설계

by benefitpd 2025. 10. 30.

퍼트넘 의미는 머릿속에만 있지 않다 외재주의 해설과 현장 적용 설계

힐러리 퍼트넘이 던진 선언, “의미는 머릿속에만 있지 않다”는 단지 수사적 구호가 아니다. 트윈어스 사고실험을 통해 그는 ‘물’처럼 자연종 용어의 지시가 개인 머릿속 표상이나 사전적 정의로 고정되지 않으며, 환경의 화학적 본질·사회적 관행·전문가 공동체의 판정이라는 외적 요인에 의해 규율된다는 점을 보였다. 더 나아가 그는 “언어적 노동의 분업”을 통해, 보통 화자는 용어의 세부 본질을 몰라도 전문가·표준·시료에 기대어 의미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해명했다. 이 통찰은 철학 교과의 논쟁을 넘어 연구윤리·표준화·정책고지·데이터 스키마 설계에 직접적 함의를 제공한다. 우리는 제품 라벨의 ‘천연’, 정책 문서의 ‘고용’, 데이터 필드의 ‘사용자’ 같은 낱말들을, 개인 심상의 모호한 그림이 아니라 공적 기준과 외부 참조물로 연결된 지시 체계로 다뤄야 한다. 그럴 때만 ‘말의 책임’이 생기고, 분쟁과 오해가 줄어든다. 본 글은 퍼트넘의 외재주의 핵심—트윈어스, 자연종·인공물의 구분, 언어적 노동의 분업, 사회·자연환경의 역할—을 차분히 해설한 뒤, 의미를 외부 참조로 “고정”하는 현장 프로토콜(용어 레지스트리·전문가 큐레이션·표준 시료/테스트·버전 관리·문맥 토큰화·감사 추적)을 제시한다. 목표는 철학의 통찰을 규정·계약·코드·대시보드로 옮겨, 말이 실제로 세계를 가리키게 만드는 것이다.

“의미는 머릿속에만 있지 않다” 자연·사회·전문성의 삼중 외재성

퍼트넘의 외재주의는 하나의 장면에서 출발한다. 지구의 ‘물’과 트윈어스의 ‘XYZ’는 겉모습·체험·일상적 용법이 완벽히 같더라도, 화학적 본질이 다르다면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동일한 심리 상태·언어 습관을 가진 두 화자의 “물”은 같은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의미는 머릿속 표상이 아니라, 세계의 구성과 공적 판정에 걸려 있다. 이때 외재성은 세 갈래로 작동한다. 첫째, 자연의 외재성이다. 자연종 용어(물, 금, 호랑이 등)는 ‘표면 속성의 묶음’이 아니라, 실험·동정(同定)·규격으로 고정되는 본질에 의해 규율된다. 우리는 투명·무미·무취라는 체험에 기대어 물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결정적 기준은 H₂O라는 화학적 구성이며, 이 본질은 개인 심리 바깥에 있다. 둘째, 사회의 외재성이다. 퍼트넘이 말한 “언어적 노동의 분업”은 보통 화자가 의미의 모든 판정 규칙을 알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마취제’, ‘합금’, ‘유기농’ 같은 용어의 지시는 전문가·기관·표준문서·시료 뱅크에 의존한다. 라벨을 읽는 시민·소비자는 전문가 공동체의 감별 능력에 기대어 올바른 지시를 수행한다. 셋째, 제도·문서의 외재성이다. 의미가 공적 판정에 걸려 있다면, 용어는 “외부 참조”를 통해 문서·계약·코드 속에 고정되어야 한다. 정의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험 방법·허용 오차·표준 시료·인증 주체·유효기간 같은 요소가 함께 적혀야 비로소 그 말은 세계를 붙든다. 외재주의는 내면을 폄훼하려는 공격이 아니다. 오히려 사적 직관과 공적 세계를 바느질하는 규범의 요구다. 우리는 평소 ‘의미’를 첫째 내 머릿속의 심상, 둘째 사전에 실린 문장, 셋째 일상에서의 용례라는 세 층으로 가늠한다. 퍼트넘은 여기에 넷째 층—실험실과 제도·전문가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는 외부 참조물—을 덧붙인다. 그리고 이 네 층이 맞물릴 때만, 우리가 쓰는 낱말들이 실제 대상을 견고하게 가리킨다고 말한다. 예컨대 “유기농”은 광고의 수사나 습관적 용례가 아니라, 특정 인증기관과 농약·비료 사용 기준, 토양 검사와 잔류량 한계라는 외부 참조물을 통해만 지시를 얻는다. “지능”은 시험지와 채점표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만 수량 표현을 얻는다. “공정”은 법령·판례·절차 규칙과의 연결 속에서만 공적 효력을 갖는다. 이 모든 연결은 ‘언어적 노동의 분업’을 전제한다. 용어마다 책임을 맡은 전문가·기관·표준 문서가 있고, 일반 화자는 그 분업 체계에 기대어 말을 쓴다. 여기서 윤리가 생긴다. 말은 연결(참조)을 책임져야 하며, 연결을 숨긴 말—사적 체험에만 기대는 라벨—은 공적 자리에서 설 자리가 없다. 외재주의의 메시지는 상식의 반대로 흐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활의 기술이다. “말을 외부 참조에 묶어라.” 그럴 때만 합의는 빨라지고 분쟁은 얕아진다. 이제 이 통찰을 현장의 설계 언어로 내려보자. 의미를 외부로 고정하는 구체적 절차가 무엇인지, 용어를 ‘참조 가능한 객체’로 바꾸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음 절에서 조목조목 제시한다.

 

외재주의 운영 프로토콜: 레지스트리·시료·전문가·버전·문맥·감사

퍼트넘의 철학을 문서·정책·코드로 옮기면 여섯 가지 절차가 나온다. 첫째, 용어 레지스트리. 조직·프로젝트·정책마다 핵심 용어를 등록부에 올리고, 각 항목에 (1) 정의 문장, (2) 외부 표준·법령 링크, (3) 시험·동정 방법, (4) 책임 기관/담당자, (5) 유효기간과 재검토 주기를 기록한다. “물”이라면 H₂O 규격, 분석법(FTIR, 이온크로마토그래피), 시험 빈도와 실험실 코드를 함께 적는다. “활성 사용자”라면 로그 규칙(28일 창, 핵심행위 목록), 봇 필터, 감사 질의(SQL 해시)까지 붙인다. 등록부는 위키가 아니다. 변경 시 심사와 공지를 거치는 반(半)규제 장치여야 한다. 둘째, 표준 시료/테스트. 자연종·소재·용매·식품·의약과 같은 영역의 용어에는 실물 표준(표준시료, 레퍼런스 물질)과 시험 프로토콜을 연결한다. 데이터·소프트웨어 영역에서는 ‘표준 데이터셋·골든 레코드’가 그 역할을 한다. 의미가 실물·데이터의 외부 참조에 닿을 때 용어는 흔들리지 않는다. 셋째, 전문가 큐레이션(언어적 노동의 분업). 레지스트리의 각 항목에는 큐레이터(전문가·심사위원·도메인 오너)를 지정한다. 일반 구성원은 일상적 용례를 추가할 수 있지만, 본질(본질적 속성/시험법/법령 연결)을 바꾸려면 큐레이터의 결재를 거친다. 회의에서 “그건 다들 그렇게 쓰잖아요”라는 항변은 큐레이터가 제출하는 외부 참조 목록 앞에서 교정된다. 넷째, 버전과 동등성 지도. 용어 정의·시험법·측정 창이 바뀌면, 신·구 정의 간 변환 규칙을 표로 남긴다. 예컨대 ‘고용’ 통계를 고용보험 가입→근로소득 신고로 바꿨다면, 과거 수치 환산식·불연속성 경보·그래프 주석을 함께 제공한다. 외재주의는 “말을 바꾸지 말라”가 아니라 “바꿀 때 연결을 남겨라”는 윤리다. 다섯째, 문맥 토큰화. 같은 표면 어휘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지시를 가질 때, 문맥 토큰을 의무화한다. ‘이탈’은 데이터팀(연속 7일 무행위), 마케팅팀(캠페인 28일 미응답), CS팀(해지요청)으로 분기한다. 보고서·대시보드는 “이탈(데이터)”처럼 접미 토큰을 붙이고, 교차 보고 시 채택 규칙을 합의한다. 이는 퍼트넘의 외재성을 조직 내 미시 환경으로 구현하는 장치다. 여섯째, 감사 추적과 공개. 의미의 외부 연결은 감사를 견뎌야 한다. 정의 문서에는 시험랩·장비 모델·버전·관측창·오류 한계를 남기고, 데이터 파이프라인에는 스키마 해시·질의 해시·커밋 해시를 남긴다. 정책 라벨에는 인증기관·판정 기준·유효기간을 부착한다. 이것이 “말의 소유권”이다. 이제 사례로 보자. 제품 라벨링: ‘천연’ 화장품 표기는 자연 유래 성분 비율·허용 용매·잔류 기준과 인증기관의 외부 참조가 동반되어야 한다. 일상 언어의 감각(향·촉감)이 아니라 표준 시험과 제도적 판정이 지시를 고정한다. 공공 정책: ‘청년 고용’은 나이 상한·근로시간·소득 기준·보험 가입 상태 등 외부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 그럴 때 보도자료의 숫자가 의미를 가진다. 데이터 스키마: ‘사용자’는 계정·개인·세션 중 무엇을 가리키는지 외부 참조(개인정보 법령·사내 정책)와 함께 분리해야 한다. 계정 삭제·가명처리·결합 시나리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임상 커뮤니케이션: ‘통증’은 환자 주관 표현(찌릿함/묵직함)과 도구화된 척도(NRS·VAS), 진단 코드와의 연결이 함께 있어야 한다. 환자의 머릿속 감각은 존중하되, 공적 의료 언어는 외부 참조와 계측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AI/검색: ‘안전’·‘유해’ 같은 규정어는 모델·평가 지침·테스트셋과 연결된 외부 참조 없이는 공허하다. 라벨러 가이드·어노테이션 예시·반례 카탈로그가 곧 의미다. 이 모든 사례의 공통핵은 “머릿속에서 바깥으로”다. 의미는 지시를 얻기 위해 세계와 제도에 닻을 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론을 정리한다. “내 경험과 커뮤니티의 통념이 곧 의미 아닌가?”—그렇다, 그러나 공적 판단의 자리에서는 ‘경험’과 ‘통념’ 역시 외부 참조를 통해 비교가능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외부 참조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데 의미가 안정적일 수 있는가?”—그렇다. 그래서 버전과 동등성 지도가 필요하다. 의미의 안정성은 불변이 아니라 추적 가능성에서 나온다. 외재주의는 바깥을 향한 의존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약속하는 설계다.

 

의미를 밖에 고정하라 말의 책임, 연결의 윤리, 추적 가능한 변화

퍼트넘의 문장을 실무의 문장으로 바꾸면 다음 세 줄이 된다. 하나, 의미는 연결이다. 개인 심상이나 사전 정의만으로는 공적 지시가 고정되지 않는다. 외부 표준·시료·시험·기관·법령과의 연결이 있어야만 우리는 “무엇을 말했는지”를 서로 확인할 수 있다. 둘, 의미는 분업이다. 언어적 노동의 분업을 설계하고 드러내라. 큐레이터·심사자·인증기관·데이터 스튜어드의 책임과 권한을 문서로 배치하면, 용어는 공동체의 힘으로 안정된다. 셋, 의미는 추적성이다. 정의·시험법·스키마가 바뀔 때 동등성 지도·버전·주석을 남겨라. 변화가 기록될 때 지속성이 생긴다. 실행 체크리스트를 덧붙인다. ①팀/기관의 핵심 용어 20개를 선정해 레지스트리에 등록한다(정의·외부 참조·시험법·책임자·유효기간). ②자연종·소재·법정 용어에는 표준 시료/골든 데이터셋을 연결하고 시험 프로토콜을 배포한다. ③모호한 용어에는 문맥 토큰(예: 이탈[데이터]/이탈[마케팅])을 부착하고 교차 보고 규칙을 합의한다. ④정의 변경 시 동등성 지도와 시각적 주석을 제공해 과거 수치를 보존한다. ⑤정책·라벨·약관에는 인증기관·판정 기준·유효기간을 표기하고 감사 로그(해시)를 남긴다. ⑥온보딩 교육에서 “의미=외부 참조” 원칙을 10분 카드로 학습한다. 이 여섯 줄은 추상적 철학을 일의 기술로 바꾸어 준다. 외재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사유의 겸허가 아니라 문서의 성실함이다. 말은 외부에 닻을 내릴 때 힘을 얻고, 표준에 닿을 때 공적이 되며, 기록을 남길 때 지속된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조직에서 가장 자주 쓰이지만 가장 자주 다투는 용어 하나를 고르라. 그 말의 외부 참조(표준·시료·기관·시험법)를 레지스트리에 연결하고, 버전과 동등성 지도를 붙여라. 그 한 페이지가 합의의 속도를 바꾸고 분쟁의 비용을 낮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내가 쓰는 이 단어는 지금 무엇을 가리키는가—머릿속의 그림인가, 아니면 세계와 제도에 닿아 있는가?” 외재주의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연결을 요구한다. 연결을 설계하는 자가 의미를 갖는다. 오늘 당신은 어떤 단어에 연결을 설계할 것인가.